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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세계/觀看天下

이념 부재의 시대

by 竹溪(죽계)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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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부재의 시대

 

뉴제주일보 2023.06.21 18:35

손종흠 전 한국방송대 제주지역대학장·논설위원

인류는 대대로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회적 이념을 만들고 간직하고 사용하면서 살아왔다. 일정한 성향을 지닌 이념은 사람들의 삶이 향상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믿음을 주었으므로 정치의 동반자로 역사의 전면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우리나라도 일정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려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적 행태를 보면 과연 저것을 이념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이념을 말하지만 철저하게 주관적인 데다 아무런 원칙도 없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라고도 하는 이념은 체계적인 관념의 인도를 받는 모든 종류의 행동 지향적 이론이나 관념 체계를 바탕으로 정치에 접근하기 위해 하는 시도 전체를 의미한다. 이념은 지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합리주의, 실용주의 등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삶을 향상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이념은 한 방향으로 치우친 편향성을 강하게 가지면서 기계론의 덫에 빠져 합리성이나 체계성과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었고, 반목과 갈등, 소모적 투쟁과 테러라는 결과를 낳으면서 조직적, 권력적 폭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20세기는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절망을 안겨준 시대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한 36년의 강제 점령이 첫 번째였고, 남북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벌인 6·25가 두 번째였으며, 일인 독재와 군부독재가 세 번째 시련이었다. 이 짐들은 우리가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이지만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확증편향(確證偏向) 세력에 의해 만들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증폭되고 있는 잘못된 이념으로 인해 생긴 진영 간의 갈등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DNA에 양보와 화합이라는 것은 아예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회 지도자들에게 영향을 받아 국민 전체가 갈등과 반목의 늪에 빠져 버렸다. 아주 친한 사이나 부모와 자식 간에도 정치 얘기는 서로 하지 말자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가 된 것을 보면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념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조직이나 국가는 방향성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면서 혼란에 빠지고 부패, 부정, 거짓, 불공정 등이 판을 친다. 확증편향에 빠진 이념으로 인해 생긴 이런 혼란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념을 타락시켜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 세대가 모두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탈출 과정을 보면 타락과 배반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모두 40년에 걸쳐 광야에서 헤매다 그 세대가 모두 죽고 나서야 그들이 염원하던 약속의 땅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성찰과 반성도 없이 20년을 넘기면서까지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으로가 더 암울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이미 기득권이 되어 버린 그들이 잡은 권력과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과 재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한층 격렬하게 발악할 것이고 그 와중에 혼란은 점차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부의 자정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인지라 선거라는 제도를 통한 물리적 응징만이 마지막 남은 희망일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방향성을 잃어버린 이념에 휩쓸리지 말고 무엇이 민족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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