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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단상/기타

[스크랩] 가수 이영숙

by 竹溪(죽계) 201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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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김태촌씨와 옥중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가수 이영숙


  

 

 

 

영화 7인의 숙녀(1970)

정면에서 바라보면 맨 왼쪽이 이영숙씨. 그 옆이 남정임, 윤정희, 한사람 건너 김창숙

 

 

 

 

 

 

 

 

 

한 때는 영화배우로 당시의 톱스타인 문희, 윤정희씨 등과 '7인의 숙녀'라는 영화에도 주연으로 출연을 했다. 가수로는 70년대 많은 히트곡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영숙씨는 암 수술 후 봉사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수술 후 완치되지 않은 불편한 몸임에도 독거노인들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현재 더 많은 독거노인들에게 체계적인 도움을 주고자 한국은빛소망회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해서 운영 중이다. 얼마 전 에는 소망회의 부족한 운영비에 보태고자 자신의 지난 세월을 토대로 ‘나도 살아요’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폐결핵으로 건강 악화된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 석방 구명운동 벌이는 아내 이영숙

 

“휠체어와 산소호흡기에 생명 의지하는 남편, 제발 가정에서 돌보게 해주세요”

 

지난 98년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와 옥중결혼해 화제를 모았던 이영숙씨가 휠체어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살고 있는 남편의 출소를 위해 눈물겨운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10월3일 형기가 끝나지만 보호감호란 이름으로 감호소에서 7년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

 

그의 애끊는 심경과 남다른 부부사랑을 들어보았다.

 

70~80년대 한국 주먹계를 휩쓸었던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씨(57)의 석방을 위해 아내 이영숙씨(56)가 눈물겨운 구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씨는 오는 10월3일로 형기가 끝나지만 보호감호 7년이 따라붙어 있어 출소가 불가능한 상황.

 

“법에서 정한 형을 다 살고 죗값을 치른 남편을 보호감호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감옥에 가둔다는 것은 너무나도 잔인한 인권유린이에요. 같은 죄로 이중처벌을 하는 거잖아요.”

 

그는 남편의 보호감호 재심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미 재판부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세계침례교회 총회장 김장환 목사 등 종교계와 정치인 등 각계 인사들의 탄원서를 받아 제출한 상태다.

 

“밖에 있는 제가 열심히 뛰어야죠. 아픈 사람을 7년 동안 더 감옥에 가둔다는 건 죽은 다음에 나오라는 말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이번에 못 나오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예요.”

 

이씨는 지난 9월14일 처음 열린 재판에서 판사가 “그 몸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정도로 김씨의 건강상태가 최악이라고 말한다. 움직일 때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와 산소호흡기를 껴야 한다는 것.

 

“지난해 봄까지는 아무리 사정을 해도 환기가 잘 안 되는 독방에 가두어두었는데 지금은 환기가 되는 방으로 옮겨주고 다른 죄수와 함께 지내도록 하고 있어요. 혼자 두었다가는 언제 위급한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김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은 89년. 당시 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그는 폐암말기 진단을 받아 왼쪽 폐를 완전히 절개하는 대수술을 받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하지만 90년 ‘범죄와의 전쟁’으로 또다시 구속돼 징역 10년(형 집행정지 4년 포함 14년)에 보호감호 7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던 중 2001년 4월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은 데 이어, 2002년 12월 폐기능과 간기능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 7월에 다시 검사를 받았을 때도 폐활량이 정상인의 43%밖에 안 되고, 폐결핵과 심한 제한성 환기장해를 앓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더욱이 폐암이 언제 재발될지 모르는 상태.

 

“폐가 하나밖에 없어 폐결핵에 자주 걸려요. 젊은 사람도 힘든 병인데 벌써 환갑이 가까운 나이고, 교도소라 음식도 변변찮은데다 의료시설도 열악해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어요.”

 

그는 면회를 할 때마다 남편이 휠체어를 타고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면회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내가 저 아픔을 대신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미어진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또다시 청송감호소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고.

 

“남편은 몸도 몸이지만 이제 법이 정해준 형기를 다 채웠으니 죗값을 치른 셈이에요. 나이도 있어 또다시 죄를 지을 가능성도 없고요. 감옥에서 청춘을 다 보낸 사람이에요. 뒤늦게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남편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김씨 역시 보호감호 재심청구서에 “만약 나에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면 청춘을 범죄 속에 방황하며 허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 몸일 때는 범죄를 쉽게 저질렀지만 이제 사랑하는 아내와 장성한 아들을 얻었기에 한 가장으로서 늦게나마 행복을 찾고 싶다”며 사회에 나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편지 주고받다 사랑 싹터 98년 옥중결혼

 

이씨가 김씨와 인연을 맺은 것은 96년 12월. 평소 봉사활동을 함께 하던 교회 선배로부터 “청송교도소에 김태촌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교화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70년대 가수로 활동하며 ‘그림자’ ‘꽃목걸이’ ‘가을이 오기 전에’ ‘아카시아 이별’ 등의 히트곡을 남겼고 영화 ‘7인의 신부’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연예계 은퇴 후 교도소, 고아원, 양로원 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다른 재소자들에게 하듯 김씨에게 편지를 보냈고, 답장이 왔다.

 

“처음엔 조직세계에 몸담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언론에 오르내리는 거물급이라는 사실은 몰랐어요. 그런데 답장을 읽어보니 ‘누가 이 사람을 폭력배라고 했을까’ 싶을 정도로 영혼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었어요. 조직폭력배 하면 잔인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는데 어린아이처럼 순박했어요.”

 

두 사람은 서신왕래를 계속했고, 늘어나는 편지만큼 애틋한 감정도 커져갔다.

 

“남편은 편지를 통해 부모님 이야기, 조직세계에 발을 딛게 된 계기 등 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진솔하게 들려주었어요. 지금은 과거를 후회하고 있고 출소하면 새 삶을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했죠.”

 

연민은 우정으로, 다시 사랑으로 발전했다. 그가 2004년 10월까지 복역을 해야 한다는 것도, 그 후에도 보호감호로 7년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암투병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98년 11월 면회를 통해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부부의 연을 맺기로 합의했다. 그 소식을 듣고 이씨의 집에선 극심한 반대를 했지만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사실 두 사람은 가정적으로 매우 불행한 편이었다. 밤의 황제였던 김씨는 밤무대 가수와 10여 년의 열애 끝에 결혼한 남다른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92년 청송교도소로 이감되자 아내가 당시 수억원의 재산을 가지고 미국으로 도피, 현지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폐암이라는 시한부 생명으로 수감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혼소송은 큰 충격을 주었다. 이씨 역시 20대 후반에 사랑에 빠졌다가 아들 하나를 낳고 이별한 뒤 혼자 몸으로 아이를 길러왔다.

 

“처음엔 결혼 약속만 하고 남편이 출소하면 그때 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려고 했어요. 그런데 직계가족이 아니면 면회 자체가 어려웠어요. 결국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결혼식은 출소 후에 하기로 했죠.”

 

이씨는 99년 3월31일자로 직접 혼인신고를 했다. 두 사람은 옥중 결혼식을 하려고 했지만 교도당국의 불허로 무산돼 현재까지 식도 못 올린 채 부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매주 한 번씩 청송교도소로 향한다. 8시간 걸려 도착해 또다시 2∼3시간 가량 기다리지만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 내외. 그마나 특별면회라도 되면 남편 손이라도 잡아보련만 이마저도 금지돼 투명 아크릴판 너머로 남편의 얼굴만 바라보아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데 정작 면회를 할 때는 하고 싶은 말을 못해요. 교도관이 옆에서 다 듣고 있는데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요. 그래서 더 마음 아프죠. 그런데 남편은 자신이 아픈데도 늘 저를 걱정해요. ‘내가 아무리 연약한 병자이지만 언젠가 좋은 가정 이루고 살 것이니까 기다리라’고 격려를 하고요.”

 

비록 지금까지 손 한번 못 잡아보고 마음 놓고 이야기해본 적도 없지만 그는 80년을 산 부부보다도 서로의 속마음을 더 잘 안다고 자신한다. 눈빛만 보고도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

 

그에겐 아들이 있다. 아들은 김태촌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같이 면회도 가고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설에는 면회를 가서 무릎 꿇고 세배도 드린다고.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정을 못 받고 자랐잖아요. 그래서 아버지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더라고요. 출소하면 모시겠다는 말도 하고요.”

 

 

 

 

 

 

 

 

 

“출소 후 건강 회복하면 함께 서예학원 차릴 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남편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없었냐고 하자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이 사람이랑 살 것이고,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하고 살 거예요.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부부의 길을 갈 겁니다. 그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어요. 남편이 있기에 제가 있고, 또 제가 있기에 지금 남편이 살아 있으니까요.”

 

김태촌씨 역시 이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모양이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땐 종이학을 접어 보내는가 하면, 지금까지 보내온 편지만 벌써 1천 통 가까이 된다.

 

“남편은 지금도 산소호흡기를 끼고서라도 편지를 써요. 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죠. 한밤중에 벨소리만 울려도 깜짝 놀라요. 교도소에서 나쁜 일로 연락이 온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하고요. 그런 제 마음을 아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늘 편지를 보내요.”

 

두 사람은 지금 출소 후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우선 요양을 하며 건강을 추스른 후 서예학원을 차리겠다고 한다. 이씨에 따르면 김씨는 교도소에서 틈틈이 서예를 배웠는데 각종 서예대회에서 입상을 할 정도의 실력이라고 한다. 최근에도 한국현대미술인협회가 주는 상을 수상했다고. 또한 한문 서예를 하기 위해 한자도 열심히 배워 한자 5급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고.

 

이씨도 오는 12월쯤에 암환자를 위한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여전히 자신을 찾는 라이브 무대가 많다는 그는 남편이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가수로 컴백할 욕심도 가지고 있다.

 

“모든 게 남편이 나온 후의 이야기죠.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이번 재판에 지면 항소를 해서라도 남편을 석방시킬 거예요. 남편이 더 병들기 전에 가정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에요.”

 

그의 목소리엔 간절함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이씨의 꿈은 10월3일 남편이 꼭 출소해 한 이부자리에서 자보는 것이다.

 

(2004.10 여성동아)

 

 

 

 

 

 

 

 

 

 

 

 

 

 

 

 

 

 

 

 

 

 

‘권상우 협박’ 사건으로 물의 빚은 전 서방파 두목 김태촌 병상인터뷰 & 가수 출신 아내 간호받는 요즘 근황

(여성조선 2007.3)

 

 

실로 오랜만에 김태촌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하지만 혐오스런 사건으로 사회면을 장악하던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 권상우와 이런저런 실랑이를 벌이다가 화해를 하고, 검찰은 의심을 하고, 흥미진진한 양상이다. 김태촌이란 이름값 하나로 인터넷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시발이 된 것은 지난 2월 5일 밝힌 검찰의 김태촌·권상우 사이에 오간 통화내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김태촌이 권상우에게 했다는 “어이, 나 김태촌인데…” 로 시작돼 “내일부터 집이 피바다가 돼도 상관없느냐?”로 끝맺은 협박성 멘트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꼭 일주일이 지난 2월 12일 김태촌이 공개한 사진 속의 김태촌과 권상우는 마치 오래된 선후배처럼 어깨동무에 미소까지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검찰이 협박 전화가 오갔다는 4월보다 5개월이나 뒤에 찍혔다는 이 사진 속 두 사람은 적어도 협박이 오갔을 정도로 각박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거기에다 권상우까지 “피바다 이야기는 없었다”라고 밝혀서, 검찰의 주장에 의문을 다는 여론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검찰과 김태촌,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지난해 11월 사행성 게임기 비리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진주교도소에 수감된 김태촌 씨가 인터뷰에 응한 것은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돌출 상황도 한몫했지만, 스스로 자신이 인터넷 검색순위 1위에 오른 걸 보면서 ‘진실을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김태촌은 우선 2월 5일 검찰에서 발표한 언론 보도자료에 불만이 많았다. 김태촌의 ‘피바다 발언’이 들어 있는 그 보도자료였다. 김태촌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권상우와 전 소속사 간 법정 싸움이 주가 아니라, 김태촌을 이용해 조폭과 연예계 커넥션을 공론화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검찰에서 ‘김태촌 때리기’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태촌의 설명에 따르면, 권상우와는 2005년 우연한 자리에서 한차례 인사를 나누어 안면 정도는 알고 있는 사이였다고 한다. 검찰 발표로 새롭게 문제가 된 지난해 4월 통화에 대해서는, 일본 오사카에 신앙 간증을 하러 갔다가 일본인 목사 N씨로부터 우연히 들은 이야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 목사가 나에게 ‘권상우 측 관계자와 일본 오사카에서 팬미팅 약속을 했고, 계약금 명목으로 권상우와 일행에게 명품(불가리) 시계 4개를 선물했고, 중개인 L씨에게 현금 2,000만원을 주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고소할 생각’이라고 말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한류스타가 스캔들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권상우에게 전화를 했던 겁니다. 권상우 씨가 제 전화를 받고 오해한 거죠. 협박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김태촌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전화를 건 4월 13일이 오비이락식으로 권상우가 자신의 소속사에 ‘전속계약 해지 내용증명’을 보낸 다음날이었다고 한다. 권상우는 ‘김태촌’이라는 말을 듣고 그가 소속사 부탁으로 협박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제가 권상우 씨에게 전화를 걸 때는 존칭을 쓰면 썼지 반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피바다 라니요? 더 재미있는 것은 내가 ‘일본 목사가 소송을 걸면 일본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피곤해진다’라고 말한 걸 ‘내 말을 안 들으면 피곤해진다’로 의미가 바뀌어서 언론에 나왔더라고요. 해도 너무합니다.”

 

실제로 ‘피바다’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권상우도 매니저를 통해 “피바다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어디에서 이 말이 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당사자인 권상우와 김태촌 모두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검찰 혼자 ‘김태촌이 피바다라고 했다’고 주장하는 꼴이 됐다. 그리고 김태촌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내가 신앙 간증을 하기 위해 일본에 머물고 있었는데, 권상우가 새로운 식구들과 공연문제로 일본에 들어왔습니다.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오해를 풀었습니다. 손잡고 화해도 했고요.”

 

김태촌이 권상우에게 “나이 어린 사람에게 실수한 것 같아 미안하네”라고 말했더니, 권상우가 “나이 어린 사람이 (전화통화에서) 말대꾸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또 화해를 하고 난 후에 권상우가 김태촌에게 “회장님”이라고 부르기에,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게”라고 말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사실 권상우가 김태촌을 고소한 적은 없다. 권상우의 한 측근도 김태촌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설명한다. 현재 권상우의 일본 사업을 돕고 있는 A사의 L대표는 지난 2월 8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이 이미 오래전에 오해를 풀었고, 권상우는 김태촌 씨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권상우와 소속사의 갈등이 원인이다

 

 

검찰에서 김태촌을 지목한 것은 권상우와 소속사 간에 벌어진 소송을 수사하던 과정에서 권상우가 “김태촌에게서도 전화가 왔었다”라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권상우는 조사를 받았던 지난해 5월만 해도 김태촌을 의심했으며, 진술하던 중에 김태촌과 통화한 내용을 녹음 파일과 함께 이야기한 것이다. 천하의 김태촌이 협박한다는데 검찰에서 어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지난 2월 2일 재판을 받았습니다. 제가 옥살이를 많이 한 사람이지만, 고소장 없이 재판 받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협박’ 혐의는 당사자간에 합의만 하면 죄가 성립되지 않으니까, 검찰에서 ‘강요 미수’로 바꿔서 기소했습니다. 좋습니다. 제대로 수사만 했으면 더 바랄 게 없고요. 지금은 결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김태촌은 1986년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습격 사건 등으로 20년 가까이 복역한 뒤 2005년 7월 사회보호법 폐지로 풀려났다. 그후 주로 신앙 간증을 하며 지냈는데, 사행성 게임 비리와 야쿠자 개입설에 휘말려 지난해 11월 검찰에 소환돼 다시 진주교도소에 들어갔다. 권상우와 일본에서 화해하고 캐나다까지 간증 일정을 끝내고 귀국하던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간증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 검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사할 게 있으니 출두하라는 거였지요. 도망갈 리 없으니 캐나다 일정까지 소화하고 간다고 했습니다. 또 내가 말한 날짜에 들어갔고요. 그런데도 검찰은 내가 몰래 귀국하다가 공항에서 붙잡힌 것처럼 언론에 말했습니다. 너무 어의가 없습니다.”

 

‘권상우-김태촌 사건’ 자체는 그 통화 하나의 문제는 아니다. 요는 ‘김태촌이 권상우의 전 소속사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이다. 만일 금전이나 다른 이해관계로 그들과 얽혀 있다면 전혀 다른 사건이 될 수 있다. 검찰이 처음 주장한 ‘조폭과 연예인 커넥션’으로 발전하면서 수사가 일파만파 확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권상우를 계속 데리고 있고 싶어했던 권상우 전 소속사의 이해관계와 전 매니저 백모 씨가 조직폭력배 출신이라는 전력이 작은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제 간증을 들은 신자들의 탄원서가 3만 장이나 도달했습니다. 제가 전화로 협박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인데, 내 전화 한 통 때문에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다니 권상우 씨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습니다.”

 

진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김태촌은 지난해 12월 28일 심장마비로 경상대 응급실에 실려왔고, 현재 입원 치료 중이다. 그는 당시 당뇨와 저혈압, 협심증 등으로 정상적인 수감생활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장마비로 막힌 관상동맥을 뚫어야 하는데, 아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해 수술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장과 연결된 세 개의 관상동맥 중 하나가 막혔어요. 한국 기술로는 수술을 못하고, 일본에서 의료진이 오기로 했습니다.”

 

 

아내 이영숙 간호 받으며 진주에서 투병중

 

 

현재 경상대 병원에는 아내 이영숙 씨가 병간호를 해주고 있다. 이영숙 씨는 1970년대 초 ‘가을이 오기 전에’를 히트시킨 가수다. 김태촌과는 1999년 3월에 옥중 결혼식을 올렸다. 어느 목사의 소개로 알게 됐다가 사랑이 싹터 결혼까지 이르렀다. 시대를 호령한 보스였지만, 이영숙 씨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였다고 한다.

 

“내가 큰 수술을 받는 것은 아무렇지 않지만, 아내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마음이 아픕니다. 내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사람입니다.”

 

국내에서 하는 사업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지만, 지금은 만사 제쳐두고 김태춘 옆에서 간병을 하고 있다. 폐암 수술 후유증으로 죽밖에 먹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한달이 멀다 하고 보약을 마련한다. 둘 다 예순을 코앞에 둔 나이지만, 사랑을 나누는 모습만큼은 젊은 연인 못지않다.

 

“나야 오늘 죽어도 괜찮지만, 아내는 정말 오래오래 잘살아야 합니다. 그래도 내가 건강해야 자신도 힘이 난다고 하니, 저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랄 뿐입니다.”

 

김태촌은 15년 전에 폐암과 경부암이 발발해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 수차례의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고, 다시 재발하지 않아서 지금은 완치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당시 대수술을 거치면서 한쪽 폐를 떼어내고 목까지 집도를 해 정상인의 상태는 아니다.

 

“억울하다. 법정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권상우에게 미안하다”

 

“나야 오늘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지만, 아내는 정말 오래오래 잘살아야 합니다. 그래도 내가 건강해야 자신도 힘이 난다고 하니, 저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모든 일이 잘 풀리길 바랄 뿐입니다.”

 

 

권상우 협박 사건 개요

 

 

지난해 권상우를 둘러싼 협박 사건에 무더기 기소가 이어져 일대 파문이 일었다. 검찰이 권상우가 국내 폭력조직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발표해 충격이 더 컸다. 이번 수사는 지난해 5월 권상우가 소속사를 바꾸는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하자 권씨가 전 매니저 등을 고소한 데서 시작됐고, 결국 무더기 기소가 이어진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지난 2월 6일 유명 영화배우 권상우를 협박해 매니지먼트 권한을 자신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도록 한 혐의(강요)로 신학동파 출신 매니저 백모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2003년 5월부터 권씨의 매니저로 활동했던 백씨는 권씨가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는 지난해 9월부터 2년간 자신과 전속계약을 맺지 않을 경우 언론에 권씨의 약점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강제로 전속계약을 맺었다. 백씨는 이 과정에서 권씨로부터 ‘본인은 I사에 소속하는 기간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I사 소속기간 중 매니지먼트 일은 백씨에게 위임한다. 이를 어길 경우 10억원을 배상한다’는 내용의 자필 각서까지 받아냈다.

 

아울러 검찰은 소속 영화배우들의 약점을 폭로하겠다며 코스닥 상장 연예기획사 대표를 협박해 30억대의 금품을 갈취한 혐의(특경법상 공갈)로 권상우의 전 기획사 대표 한모 씨까지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서는 김태촌도 권상우를 협박했다고 주장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졌다. 검찰은 김태촌과 권상우 간 전화통화 내용을 녹취록 형태로 공개하며 김태촌을 압박했다. 하지만 김태촌은 협박은 없었다며 반발하고 나섰고, 권상우도 ‘김태촌과는 이미 끝난 일’이라고 밝혀 협박설을 부인했다. 검찰과 김태촌,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3월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출처 : scrap
글쓴이 : ks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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