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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세계/강아

기생 강아의 외줄타기 사랑

by 竹溪(죽계) 2006.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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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강아(江娥)의 외줄타기 사랑

 


 

 

  조선조의 대 정치가였던 송강 정철은 문학적인 소질도 뛰어나서 우리말로 된 주옥같은 가사와 시조를 많이 남겼다.

 

  그는 바른 소리를 잘 하는 성품으로 인해 유배생활과 은둔의 생활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때 많은 작품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은 후대의 김만중, 홍만종 등에 의해 우리나라 최고의 연군지사(戀君之詞)로 평가받게 된다.

 

  비록 그의 삶은 정치적인 여파로 파란만장했으나 노래로 일세를 풍미한 풍운아임에는 틀림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지은 두 미인곡은 부엌데기나 초동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송강을 평생을 바쳐 사랑한 기녀로, 송강이 전라감사로 가있을 때 머리를 얹어 준 자미(紫薇)라는 동기가 있었다. 송강이 그녀를 가까이 하자 남원 사람들은 그녀를 송강의 이름을 따서 ‘강아’라 불렀다. 나중에 도승지가 되어 서울로 가게된 송강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써주며 자신을 잊을 것을 당부하였다.

 

  “봄빛 가득한 동산에 핀 자미화는, 다시 보니 옥비녀보다 아름답구나, 망루에 올라 장안을 바라보지 마라, 거리의 사람들 모두 꽃다운 모습 사랑하리라”

 

  그렇게 송강을 떠나 보낸 강아는 10여 년 동안 그를 만나지 못하다가 강계로 귀양갔다는 소식을 듣고 수천 리 길을 달려갔으나 잠깐의 해후 끝에 또 다시 이별하게 된다.

 

   서울로 갔던 강아가 왜란으로 인해 어수선한 틈을 타 다시 강계로 갔으나 귀양에서 풀린 송강은 이미 그곳을 떠난 뒤였다. 강아는 그가 평양을 향해 떠났다는 말을 듣고 남쪽으로 가다가 왜적에게 잡히고 만다.

 

   이때 송강의 제자인 이량(李亮)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몸을 바쳐 일본군 대장인 고니시(小西)를 유혹하여 평양성 탈환에 큰공을 세우게 된다.

 

  고니시에게 몸을 더럽힌 강아는 더 이상 송강을 섬길 수 없게 되자, 소심(素心)이란 여승이 되어 그 남은 생애를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죽은 송강의 한을 푸는 것에 정성을 다했다.

 

  그 후 정권이 바뀌어 송강의 신원(伸寃)이 이루어지자 송강마을에 와서 송강의 묘소를 지키다 여생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송강과 강아의 사랑은 각각의 외줄타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송강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서 볼 때 그의 사랑은 나라와 임금에 대한 충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송강을 위해 평생을 바친 강아의 사랑은 오직 지아비를 향한 정절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송강 묘소는 충북 진천으로 옮겨졌으나 강아의 묘소는 그대로 송강마을에 남아있다. 비록 평생을 바쳐 사랑한 낭군의 곁으로는 가지 못했지만,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안고 송강 대신 고향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송강마을 입구인 39번 국도변에는 송강의 시비가 서 있고, 송강고개를 넘어가면 송강이 낚시를 했다는 송강소와 송강모퉁이 등이 있다. 마을 뒷산 중턱에 송강의 묘소가 있었는데, 권필이 송강묘를 지나며 지은 한시가 유명하다

 

  “빈산 낙엽 진 나무에 비는 쓸쓸히 내리고, 재상의 풍류가 이처럼 적막하구나, 슬픈 마음에 술 한 잔도 올리기 어려운데, 옛날의 미인곡만 지금도 불려지는구나”

 

  송강을 사랑한 여인의 한과 임금을 사랑한 송강의 삶을 함께 간직한 이 곳 송강마을을 답사해 보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애틋한 정서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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