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세계/우리문학현장기행
이별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대동강의 노래들
竹溪(죽계)
2005. 12. 23. 19:05
평양의 젖줄이기도 한 대동강은 평남 북동부 낭림산맥의 서쪽에서 발원해 남서로 흘러 황해로 들어가는 강으로서 우리나라 5대 장강
중 하나이다. 고조선 때부터 우리 문화의 중심지 구실을 했던 대동강 연안은 고대문화의 발상지로서 일찍부터 개척이 이루어져서 농업이 발달했다.
따라서 고구려와 고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때문인지 대동강을 소재로 한 문학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일 정도로 풍부하고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이별 노래인 `서경별곡'을 시작으로 김황원(金黃元)의
`부벽루(浮碧樓) 시와 정지상(鄭知常)의 `대동강(大同江)', 그리고 고려 말의 시운을 노래한 목은 이색(李穡)의 `부벽루'를 비롯해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대동강을 소재로 한 문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랑하는 사람이 대동강을 건너 떠나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한과 절규가 서려있는 `서경별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이별의 정서는 정지상의 대동강(大同江)과 같은 송별시의
절창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비 갠 언덕에는 풀빛 더욱 푸른데, 남포로 님 보내는 구슬픈 노래,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洞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派)”이라고 노래한 이 작품을 후대 사람들은 이별하는 자리에서는 반드시
세 번씩 연창했다고 한다. 첫 구에서는 이별을 하지 않으려는 화자의 정서가 대동강 언덕의 푸른 풀빛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비가 그쳤기 때문에
님을 보내야 하는 화자의 심정은 암흑과도 같은데, 더욱 푸른색을 내는 강 언덕의 풀빛이 야속하기만 하다. 화자의 어두운 심정을 풀빛의 푸르름과
절묘하게 대비시킨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구는 이별의 한을 노래로 부름으로써 이별의 정서를 고조시키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이별의
정서는 세 번째 구절과 네 번째 구절에서 극대화돼 나타나는데, 대동강 물이 마르지 않는 까닭은 바로 이별 눈물이 해마다 보태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이르면 이제 이별은 화자의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이별로 전이되어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버린다.
이별의 시는 아니지만 고려 중기의 시인이었던 김황원에 대한 일화는 대동강의 아름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벽루에 올라갔던 김황원은 그곳에 걸려있는 대동강을 노래한 시가 모두 신통치 않다고 여겨 그것들을 모두 태워버린 후 부벽루에 걸 맞는
시를 지어 걸기로 하고 부벽루에 앉아서 시상을 정리했다.
하루해가 다 가도록 시상을 떠올리며 시를 지었으나 해가 질 무렵에야 겨우 “긴 성벽 한쪽으로는
굽이쳐 흐르는 물이요, 넓은 들 동쪽에는 점점이 산이로다(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라는 대구를 지었으나 나머지 두 구를 채우지 못하고
울면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대동강을 중심으로 한 부벽루의 풍광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말이나 시로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아름다운 대동강의 풍광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다만 선조들이 남긴 문학작품들을 통해 그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