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릭스'1,2,3편에 대한 감상평
음양조화론을 강조하는 영화 '메트릭스'
메트릭스는 체제를 의미한다. 하나의 체제는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체제는 만들어지는 순간에 또 하나의 손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어 나가면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게 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메트릭스가 가지는 체제라는 말속에는 제작과 운영이라는 뜻이 함께 들어있게 된다. 3편까지 상영된 메트릭스라는
영화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메트릭스의 제작자와 그것을 운영하는 오라클에 의해 움직여지는 체제를 그려나가고 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는 메트릭스는
크게 두 세계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하나는 물질적이면서 감각적인 거대세계이고, 하나는 물질적이면서 관념적인 미세세계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거대세계는 인간의 육체나 자연물 등과 같이 일상적인 감각으로 느끼고 알 수 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그리고 미세세계는 거대세계의 안에
있으면서 그것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는 아주 작은 세계를 가리킨다. 거대세계나 미세세계는 모두 물질과 정신으로 이루어지는데, 거대세계는
정신이 육체에 깃들어 있으면서 육체를 움직이지만 미세세계는 육체가 정신에 깃들어 있으면서 육체에 의해 정신이 움직여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미세세계에서는 하나로 통일된 거대한 정신주체에 의해 아주 작은 육체가 움직이게 됨으로써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바로 기계로 나타난다.
이제 영화를 하나 하나 분석해보도록 하자. 메트릭스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시온'인데, 이것은 생명의 근원이며 동시에 생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라고 하는 네오가 등장하는데, '네오'는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는 곳은 미세세계에서이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트리니티라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그'로 대표되는 정신세계, 혹은 미세세계가 사랑으로 연결될 때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오라클은 메트릭스의 관리자인데, 제작자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이다. 오라클은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메트릭스를 감싸안고 보호하면서 그것을 발전시키고 유지해나가야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라클은 시온을 위협하는 기계 군단까지도 메트릭스 안에서 필요함을 강조한다. 시온을 공격하는 중심축인 기계도시의 듀스 엑스 머시나는 그곳의 절대정신이면서 시온과는 대립되는 위치에 서있다. 미세세계의 중심부가 바로 이곳이다. 네오와 맞서는 스미스는 기계도시의 피조물이었으나 스스로의 능력으로 독립하면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스미스와 그 복제물들의 세계가 바로 미세세계를 움직이는 바이러스이다.
이 영화는 거대세계와 미세세계의 합성으로 체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려는 존재와 부수려는 존재가 모두 필요함을 강조한다. 거대세계 속에서 그것에 깃들어 있는 시온을 유지하려는
반바이러스적 미세세계와 시온을 부수어 변화시키려는 바이러스적 미세세계가 공존하면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 본다면 인간의 육체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으로 인식하여 만든 영화가 바로 메트릭스 시리즈인
셈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대해 좀더
세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가 오라클인데, 오라클은 중립자이다. 메트릭스의 제작자로부터 관리권을 이양 받아 그것을 잘 보호하면서도
발전시켜야 하는 체제 관리자인 셈이다. 그러므로 오라클은 시온을 지키려는 인간에게도 그것을 파괴하려는 기계에게도 편파적으로 대할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시온을 파괴하려는 바이러스도 시온을 지키려는 인간도 오라클에게 있어서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 체제의 구성요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오와 스미스는 서로 반대편의 극에 있는 오라클 자신이며 또한 오라클이 맡고 있는 관리자의 역할인 것이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세계에서도 변종이 나타났으니 중앙 바이러스의 통제를 벗어난 스미스가 자신의 능력으로 복제한 분신들을 통하여 오라클과 네오를 죽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되자 오라클은 자신이 스미스의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바이러스와 인간의 원래 관계를 회복하려고 한다.
스미스가 오라클을 찾아가 죽이자 그는 변하여 스미스의 속으로 들어가 잠재하게 된다. 변신한 오라클은 네오와의 마지막 싸움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새로운 생명을 상징하는 빛으로 화하면서 네오와 스미스를 하나로 통일시켜 일을 마무리한다. 서로가 죽어야만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되고 그래야만 새로운 세계로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네오와 스미스가 빗속에서 마지막 전투를 벌일 때 움푹 파진
웅덩이 속에서 서로의 마지막을 맞이하는데, 이것은 생명 탄생의 요람인 자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마치 생명의 근원을 가진 정자가
난자의 속에 들어가서 자신을 함몰시킴으로써 난자를 변화시켜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구덩이 속에서 싸우는 스미스와 네오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자 시온을 공격하던 바이러스인 기계군단은 모두 물러가게 되고 시온은 지켜지게 된다. 시온이 있어야 기계군단도 할
일이 있고, 기계군단이 있어야 시온 역시 늘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메트릭스의 제작자가 말한 위험한 게임을
오라클이 했던 것이다. 또한 오라클은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일을 맡길 후계자를 이미 지정해놓게 되기도 하며, 그 여자아이는 빛을 통해 네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그'의 상징으로 나타나는 네오와 반대편에 있는 스미스이다.
네오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로 사랑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랑의 힘으로 싸우는 시온의 수호천사이다. 인간의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육체를
넘어서서 존재하는 절대정신 같은 것이 바로 네오인 것이다. 그러므로 네오는 육체적인 거대세계와 바이러스적인 미세세계를 오락가락 하며 시온을
지켜내는 구실을 한다. 두 개의 세계가 양립하면서 굴러가도록 만들어진 메트릭스 안에서 반바이러스적 미세세계를 이끄는 지도자인 셈이다. 이러한
네오는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몸 속에 깃들어 있으면서 육체가 가진 능력보다 훨씬 초월적인 힘을 가지는 미세세계로의 출입이 가능한
존재이다. 그러나 네오는 자신의 반대편에 자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라클의 예언을 통해서
전달되지만 네오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길을 가고 있다. 스미스보다 실력이 못하면서도 끝까지 덤벼드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존재의 처절한 몸부림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스미스는 마지막 싸움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덤벼드는 것이냐고 말이다. 이 과정 속에서 스미스는 네오와 자신이 같은 존재이며 반대편에 있을 뿐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비는 물이니 생명을 탄생시키는 기초가 된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이 비가 고인 웅덩이 속에서 네오와 스미스는 싸움과 빛을 통해 하나가
됨으로써 생명 탄생을 위한 처절하고도 긴 여정이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스미스는 기계도시에 반기를 든 변종 바이러스 같은 존재이지만 그것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이나 평화는 찾아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오라클의 양쪽에 서 있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네오와
스미스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처절한 몸싸움을 벌이면서 그 결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남과 녀, 음와 양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네오와 스미스의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端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端은 뾰족하면서 양끝이 같은 모양으로 된 사물의 양쪽 끝을
나타내는 말인데, 끝이라는 의미와 함께 핵심이라는 뜻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쪽의 端은 상극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몸체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결코 핵심이 될 수 없다. 네오와 스미스의 관계가 가 端으로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시온과 기계군단이다. 시온은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고, 기계군단은 기계도시의 명령을 받아 시온을 공격하는 단순한 구조를 가진 바이러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시온의 세계와 기계도시의 두
세계는 모두 미세세계에 속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거대세계에 속해있기도 하다. 즉, 체제로 나타나는 육체라는 거대세계 속에 그것을 쓰러뜨리려는
바이러스의 미세세계와 바이러스로부터 거대세계인 육체를 지켜서 시온을 보호하려는 반바이러스의 미세세계가 바로 기계군단과 시온의 수호자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쪽은 인간으로, 다른 한쪽은 기계로 나타내어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인 기계군단은 중앙의
통제를 철저하게 받으면서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죽고 죽이면서 서로의 세계를 새롭게 하는 그러한 일을 인간과 기계가 하고 있는 것이다.
메트릭스가 갖는 이러한 음양조화론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무조건 정복과 파괴의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서구인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나니까 세상이 더 어지러워진 것을 생각할 때 서구인들이 가진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우주관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이제 서구인들도 메트릭스에서 보여준 음와 양, 그리고 거대세계와 미세세계의 조화를 바탕으로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 영화를
통해 가져보기도 한다. 음과 양 중 어느 한쪽이 없으면 우주의 질서는 한순간도 지탱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보여준 영화가 바로
매트릭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