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뜸부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새이다. 뜸부기에 대하여 실제로 잘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이 사람들에게 불리는 동요에 등장하는 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동요를 듣고 있으면 뜸부기는 상당히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뜸부기는 낭만적인 새가 아니라 농부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미움을 받는 새이다. 왜냐하면 애써 지은 벼농사를 뜸부기가 망쳐서 쌀의 생산량을 줄여 놓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뜸부기는 논 한가운데에 집을 지어서 알을 낳고 새끼를 쳐서 키우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뜸부기가 논 한가운데 집을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논에는 수많은 종류의 벌레들이 살고 있어서 새끼들에게 먹일 양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뜸부기가 아무 때나 논에 들어가서 집을 짓는 것은 아니다.
뜸부기가 논에 집을 짓는 시기는 대략 벼가 이삭패기를 해서 아주 건장한 모습으로 다 자란 후이다. 이때부터는 여름 농한기가 시작되는데, 농부가 논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게 된다. 뜸부기는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집짓기를 시작하여 논 한가운데에 안락하면서도 안전한 보금자리를 꾸민다.
하지만 뜸부기가 집을 지을 때는 논 한가운데에 그냥 짓는 것이 아니라 벼의 목을 부러뜨려서 그것을 얼기설기 엮어 그 위에다 보금자리를 만들기 때문에 상당량의 벼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죽게 되어 농부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다.
벼의 키는 50센티를 훨씬 넘도록 자라는데, 그 모양을 보면 잎사귀보다 열매를 맺는 부분이 높게 올라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잎사귀와 잎사귀 사이의 중간에서 새순이 나와 그것이 쑥 올라가고 그곳에서 꽃이 피고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이런 모양이 되면 벼는 거의 다 자란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태로 된 논에 들어간 뜸부기는 푸르고 무성한 잎사귀는 그냥 둔 채로 벼가 열리는 중심 대궁을 여러 개 꺾어서 둥글게 만들고 그 위에다 부드러운 짚 같은 것을 깔아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벼의 전체 모습은 살아있는 상태이면서 열매만 맺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아주 교묘한 위장술이기도 한데, 벼의 대궁을 꺾어서 지은 집보다 푸른 잎사귀가 위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논을 바라보는 농부들의 눈에는 그냥 벼가 살아있는 것으로만 보이기 때문에 그 논 중간에 뜸부기 집이 있는지를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뜸부기의 집은 벼베기를 할 때가 되어서야 발견되는데, 이때 뜸부기는 단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뜸부기 집으로 인하여 입은 손해는 쌀로 계산하면 몇 말 정도는 족히 될 것이기 때문에 피땀 흘려 지은 농사를 망친다는 생각에 농부들은 뜸부기를 미워하고 집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기도 하기는 한다. 그러나 뜸부기의 솜씨 또한 보통이 아니어서 농부들의 판정패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뜸부기는 자신의 집과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이 정도의 위장술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논 한가운데 보이지 않도록 집을 지은 다음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하여 뜸부기가 하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밤에 논 한가운데서 우는 일이다.
그 소리가 온 골짜기를 울리기 때문에 동요에서는 그 울음소리를 소재로 하여 노래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논에서 밤에 우는 뜸부기의 울음은 사람의 귀를 현혹시키기 위한 철저한 속임수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채기 어렵다.
소리만 들어도 누구의 어느 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던 농부들은 다음날 뜸부기가 울던 논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샅샅이 뒤지게 되는데, 아무리 수색해도 뜸부기의 집은 절대로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뜸부기가 밤에 우는 곳은 자신의 집에서 최소한 몇백 미터는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집과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뜸부기가 하는 두 번째 방어술은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와 공중에서 날아와 집으로 들어갈 때의 교란 작전이다.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고 다시 먹이를 잡기 위해 나갈 때 뜸부기는 집에서 기어 나와 논바닥으로 들어간 다음 그 밑으로 기어서 몇 백 미터를 기어간 다음 날아오른다.
한번을 동쪽으로 기어갔으면 그 다음은 서쪽이나 북쪽으로 기어서 나간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먹이를 물고 와서 내려앉을 때도 마찬가지다. 집과는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내려앉은 다음 물밑으로 기어서 집으로 들어간다.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이처럼 방향을 바꾸기 때문에 행여 사람들의 눈에 띈다고 하더라도 집이 발견될 염려는 거의 없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영리한 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천적이 있게 마련인데, 뜸부기의 천적은 바로 동네 개구장이들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산과 들, 그리고 연못 등 어느 곳이나 놀이터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정해진 일만 하는 어른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것들을 발견하곤 한다.
개구장이들이 마구 쏘다니다가 보면 그야말로 우연이 뜸부기 집 옆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뜸부기 부모 중 한 마리가 아이들의 옆에 등장한다. 그냥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날개가 부러진 것처럼 시늉을 하기도 하고 다리가 부러져서 잘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 행동은 아이들의 시선이 충분히 닿을 거리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날아다니는 새를 잡기 위해 부상을 당했다고 판단되는 뜸부기를 정신없이 쫓아가게 된다.
금방 잡힐 듯 하면서도 절대로 잡히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도망을 다니던 뜸부기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그렇게 되면 뜸부기를 쫓아가던 아이들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기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하여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잠깐 동안은 어이없어하기는 하지만 실컷 놀았으므로 뜸부기는 금방 잊어버리고 다른 놀이감을 찾아 나서는 것이 개구장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뜸부기에게 개구장이들이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뜸부기 부모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천방지축으로 쏘다니는 개구장이들의 눈을 피하는 일이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뜸부기는 개구장이들에게 그 해의 새끼를 다 빼앗기게 되는 일을 종종 당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알을 훔치게 되면 그 자리에서 깨어서 먹기도 하고, 집으로 가지고 가 쪄서 반찬으로 하기도 한다. 그리고 새끼가 이미 나왔으면 그것을 잡아다가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그 새끼들의 어미로 보이는 뜸부기가 우리들의 주위를 뱅뱅 돌아다니면서 슬프게 울어댄다.
사람에게 덤벼들 수는 없으므로 애만 태우다가 사라지곤 하는데, 결국 새끼들을 다 죽게 만들기 때문에 개구장이들의 손에 걸려서 부모 뜸부기에게 돌아간 새끼뜸부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뜸부기는 며칠 밤을 울다가 어느 사이엔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뜸부기가 우리들의 곁에서 점점 사라져버리게 되어 보호의 대상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사람의 손길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천방지축으로 마구 날뛰어 다니던 개구장이인 우리들의 정겨운 놀이감이기도 했던 뜸부기는 나에게 있어 세상과 맞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지혜와 함께 자신과 세상 사이를 변증법적 관계로 인식하고 이에 대하여 순응하며 적절하게 대응해나가는 삶의 방식을 깨우쳐준 자연의 스승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