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단상/고향이야기

하늘에서 물고기는 떨어지고

竹溪(죽계) 2005. 12. 18. 12:46
728x90
SMALL

 

하늘에서 물고기는 떨어지고


    백두대간의 험산준령이 남으로 달려오다가 잠시 멈춰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꺾은 곳에 소백산이 있는데, 그곳에서 남동쪽으로 뿌리를 틀어 내린 야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바로 순흥이며 내가 어릴 때 살던 고향집이 있던 곳이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엄청나게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서 한강유역에 진출하여 중국과 교역을 하려는 욕망을 지닌 신라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소백산만 넘으면 바로 단양과 영월로 이어지면서 한강의 상류에 이르게 되니 신라로서는 북진을 위한 온 힘을 이곳에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영향으로 인하여 고려시대와 조선초기까지만 해도 북쪽에는 개경이 있고 남쪽에는 순흥이 있다는 뜻의 남순북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봉화대가 있었다는 비봉산 아래 펼쳐진 이곳의 작은 평야에는 지금도 땅만 파면 기와장이 나오고 있으니 옛날의 순흥이 얼마나 컸었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어른들의 말씀에 의하면 순흥이 한참 번성했을 때는 비가 올 때도 처마 밑으로 비를 맞지 않고 10리를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울분을 느낀 금성대군이 군사를 일으키려다 실패하고 반역의 땅으로 낙인찍혀 폐허가 된 이래 지금까지 청정지역으로 고즈넉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북서쪽으로는 높고 험한 소백산이 막고 있지만 남쪽과 동쪽으로는 야트막한 야산과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곳이 바로 순흥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순흥에서 남쪽으로 3킬로 떨어진 산밑에 있는 꽃까리라는 이름을 가진 골짜기의 독가촌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집 뒤에 하나 있어서 이것을 표대등이라고 하였고, 그 봉우리가 흘러내린 아래에 우리 집이 있었다. 이 봉우리를 표대등이라고 하는 이유는 주변의 다른 산들에 비해 이 봉우리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사방 어디에서도 잘 보이기 때문에 표지로 삼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봉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작은 산맥이 뻗어나간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그 봉우리를 주봉으로 하는 산맥이 남동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살짝 갈라져 멈춘 아늑한 곳에 우리 집은 자리하고 있었는데, 주변에는 아무도 살지 않고 우리 집 한 채 뿐이어서 獨家村이라고 불렀다.

   집이 하나 뿐인 진짜 이유는 그곳이 사과를 하는 과수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일나무가 동네 부근에 있으면 병을 옮기기 쉽기 때문에 보통 과수원은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와 좀 떨어진 곳에 있기 마련인 것이다.

 

    남동쪽을 향해서는 넓은 평야가 펼쳐지고 북서쪽으로는 산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야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으로는 표대등에서 뻗어 내린 야트막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서 우리 집은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자리가 그래서 그런지 옛날에는 엄청나게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밭을 갈다가 보면 그 잔재로 보이는 기와장이 나오기가 일쑤였다. 언젠가 돈을 모으면 그곳을 발굴해서 삼대목이라도 찾아볼까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그 뜻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집이 있어서 그런지 비가 올 때의 광경은 정말 볼만했다. 우리 집에서 볼 때 비는 주로 두 방향에서 오는데 하나는 북서쪽의 산을 넘어 골짜기를 타고 오고, 다른 하나는 남동쪽에서 벌판을 건너서 온다.

 

    나는 이 두 종류의 비를 모두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벌판을 건너오는 비는 검은 구름과 비가 벌판을 덮쳐 오는 모양이 수천수만의 군사가 밀려들어오는 것 같아서 좋았고, 북서쪽에서 산을 넘어 오는 비는 거센 바람을 몰고 와서 온 땅을 울리면서 세차게 내리기 때문에 좋았다.

 

 

   비가 남동쪽에서 들어올 때는 검은 구름과 빗줄기가 하나로 되어 하늘을 덮으면서 벌판을 집어삼킬 듯이 들어오는 장엄함과 빤히 보이는 엄청난 비와 구름 때문에 느끼는 공포감 때문에 나는 그것을 좋아했다.

 

    집 뒤의 산에 올라가기만 하면 40km 떨어진 안동의 학가산이 보일 정도인데, 남동쪽에서 비가 올려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잽싸게 집 뒤의 산으로 올라가서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기마대 같은 빗줄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그 빗줄기를 타고 눈동자가 까맣고 목이 긴 선녀가 피리를 불면서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선녀는 비를 무척 싫어했던 모양인지 한번도 그 모습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남동쪽에서 비가 들어올 때는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또 하나의 현상이 자주 나타나곤 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지개였다.

 


    지금 우리는 무지개가 하늘에 걸렸다고 하지만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순흥에서는 무지개는 항상 박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무지개의 양쪽 끝은 언제나 강이나 호수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무지개 떴다, 혹은 무지개 걸렸다고 하는 말을 나는 학교에 가서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남동쪽의 벌판을 건너온 구름은 엄청난 양의 비를 내리고 오후에 개일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면 동쪽 하늘에는 무지개가 뜨기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는 무지개가 뜰 때마다 오늘 무지개는 어느 마을 앞 냇가에 박았느니 하면서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무지개의 끝이 우리 마을의 저수지에 박힐 때면 즉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무지개를 바라보곤 했었다.

 

    무지개는 너무 가까이 가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지개가 박힌 저수지에서 500m이상 떨어진 산 위에서 보는 것이 제격이었다. 내가 살던 집은 저수지와 반대편 산너머에 있었기 때문에 무지개가 우리 마을 저수지에 박히는 날이면 나는 전력을 다해 들판을 건너 작은 동산을 올라가서 그 꼭대기에서 엎드려 무지개의 끝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멀리서 보는 무지개도 아름답지만 가까이서 보는 무지개는 더욱 아름다워서 연못에서 용이 그것을 타고 올라간다는 옛날 이야기가 정말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남동쪽의 벌판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구름과 비의 모양이 千軍萬馬가 짓쳐들어오는 것 같고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거의 반드시 하늘에 걸릴 무지개를 기다리면서 나의 동심은 영글어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비가 북서쪽의 산맥을 넘어서 골바람을 동반하고 올 때는 엄청난 폭풍우가 회오리와 함께 몰아치는데, 이 때는 진기한 현상을 보기 때문에 더욱 그것이 흥미로웠다.

 

   세찬 회오리 바람과 함께 엄청나게 굵은 비가 내릴 때면 언제나 우리집 마당에는 하늘에서 물고기가 떨어졌는데, 작은 물고기는 없고 크고 힘센 물고기가 후두둑 툭탁 하고 떨어졌었다.

 

    과수원의 넓이가 있고, 주변에는 밭과 논이 있어서 최소한 100m 안에는 그런 물고기가 살지 못하니 비가 올 때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고기는 100m 이상을 날아온 것이 될 것이다.

 

    그럴 때면 비를 피해 마루 밑에 숨어있던 장닭이 쫓아 나가서 물고기를 물고 들어와서는 암닭에게 먹이곤 하는데 그 때만 되면 나는 마루에 앉아서 비오는 모양을 신이 나서 바라보곤 했었다. 물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사실 같지 않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지형상의 특징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서쪽에서 비가 내리칠 때는 마치 물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내리는데 이것을 본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 올랐을 것이고 그러다가 비바람에 휩쓸려서 하늘로 올라갔다가 마당에 떨어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북서쪽에서 비바람이 칠 때는 한 순간 우리 집이 있는 과수원은 공기가 없는 진공 상태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가 갑자기 우르르 쾅, 쏴! 하는 대지를 흔드는 굉음과 함께 비가 쏟아지곤 했었는데, 비를 몰고 오는 골바람이 비어 있는 과수원 자리로 회돌이를 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물고기가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2000여년 전의 杜甫가 쓴 시에도 나오고 있어서 그 놀라움을 금할 길 없었던 적이 있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두보의 시를 접하게 되었는데, ‘엄청나게 비가 오는 날 친구가 와서 반갑게 술을 마셨다’는 제목의 시에 보면 ‘하늘을 뒤흔드는 천둥소리는 제비집을 뒤집어 놓는 듯하고,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는 강의 물고기를 떨어뜨리네’(震雷翻幕燕 驟雨落河魚)라는 구절에서 이미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詩聖이라 불리는 두보의 시적 감각이 그런 것을 피해갈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시를 지을 때 시인이 처했던 상황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해설을 읽어본 나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 구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해설을 붙였는데, 한결같이 강에 사는 물고기가 비가 오면 밑으로 가라앉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던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시인이 문을 열어놓고 비가 세차게 내리는 모양을 구경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어진 것임을 고려해야함을 해설자들은 잊어버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투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고기와 快刀亂麻처럼 들판을 가로질러 건너오는 엄청난 모양의 구름과 비, 그리고 저수지나 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아름다운 무지개 등은 나의 어린 시절을 수놓았던 가장 찬란한 추억이었으며 말없는 친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