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字一言-婚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는 부부가 되기 위해 일정한 절차를 거쳐 치르는 의식(儀式)을 혼인(婚姻)이라고 한다. 이 표현에서 중심을 이루는 글자는 ‘婚’인데, 매우 흥미로운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글자는 女와 昏(어두울 혼)이 결합한 형태인데, 왜 이런 글자들이 모여서 남녀의 결합을 나타내게 되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글자의 뜻만으로는 아무리 해도 그런 뜻이 나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女(계집 녀)는 가슴에 두 손을 가슴에 교차하고, 무릎을 구부려서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갑골문을 비롯한 옛글자에서는 손과 무릎을 비롯하여 사람의 모습이 뚜렷했으나 秦 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손과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는 변화를 겪었고, 점차 지금과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이것은 너(您), 어머니(母), 부인 등의 뜻으로도 쓰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글자로 되었다.
昏(어두울 혼)은 氏(뿌리 씨, 성 씨)와 日(해 일)이 아래위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글자의 위에 있는 氏의 기본적인 뜻은 뿌리, 아래, 근본 등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귀족들의 종족 계통을 표시하는 칭호로 되면서 씨족(姓)이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그런 이유로 昏에서 쓰인 氏라는 글자는 ‘아래로 감’, ‘내려감’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글자의 아래는 해를 나타내는 日이 오는 이유는 오후가 되어 해가 서쪽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정오를 지나면 해는 점차 서쪽으로 기울면서 빛의 강도가 약해지고 밝음이 어슴푸레한 상태로 천천히 바뀌어 간다. 그래서 昏은 해가 지는 것을 나타내게 되어 어둡다는 뜻을 기본으로 가지게 되었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성을 나타내는 女와 어두움이라는 뜻을 가진 昏이 결합한 것이 婚인데 무슨 이유로 남녀가 부부로 되기 위해 치르는 의식인 혼인, 혹은 결혼을 의미하게 되었느냐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양(陽)과 음(陰)으로 나누어서 인식하였는데, 그것이 결합하고 변화하면서 만물을 만들어낸다고 믿었다. 소위 말하는 음양 이론인데, 하늘, 해, 밝음, 낮 등은 양으로 보고 땅, 달, 어둠, 밤은 음으로 보는 것 따위이다.
양은 만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원인 씨앗을 제공하고, 음은 그것을 받아서 키워낸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그 이론이 사람에게 적용되어서는 남성은 양이고, 여성은 음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낮에서 밤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저물 무렵, 오후, 저녁 등의 시간은 양의 기운이 약해지고 음의 기운이 강해지는 순간이라고 보았다.
남녀가 혼인하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자기의 가족으로 맞아들여 가정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여성을 맞아들이는 시간으로는 오후에서 저녁 무렵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음이 왕성해지는 시간이면 후손을 낳고 키워내는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에게 좋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婚(혼인할 혼)이라는 글자에 어둡다는 의미를 가지는 昏이 들어간 것을 결코 나쁜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후나 저물 무렵이 혼인의 주체인 여성에게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 글자를 결합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결혼식에서 주인공이 여성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