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을 떼다 어원
학을 떼다 어원
무엇인가에 질려버릴 정도로 괴롭거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느라 진땀을 빼고 겨우 그것에서 빠져나온 것을 가리켜 ‘학을 떼다(뗐다)’라고 한다. ‘학+을+떼다’가 결합한 형태인 이 표현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학’이다. ‘떼다’는 ‘붙어 있거나 이어져 있던 것을 떨어지게 하는 것이고, ’을‘은 목적격 조사이므로 이 표현에서 ’학‘이란 말이 없으면 주어가 없어서 다른 말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학’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학’이 무엇이며,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등등을 파악하면 저절로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쓰이는 ‘학’이라는 말은, 첫째, 토하거나 뱉는 소리, 둘째, 학질(瘧疾), 셋째, 학문(學問), 넷째, 두루미(鶴), 다섯째, 학문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떼다’와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학질과 학문(공부)을 들 수 있다. 나머지는 어떤 경우에도 ‘떼다’와는 결합할 수 없다. 이 두 가지를 ‘떼다’와 연결할 수 있는 이유는 학질이 아주 지독한 병이어서 그것을 낫게 하는 데 무척 힘들었거나 힘든 공부에서 벗어나느라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을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공부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이런 표현을 썼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에는 공부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주로 했는데, 이것에서 벗어난 것을 떼 버렸다고는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부는 특정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만든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게 쓰일 수 있는 말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러므로 ‘학을 떼다’에서 ‘학’을 학문으로 볼 가능성은 배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말은 살아 숨 쉬는 것인데, 학문이란 뜻으로 이런 표현을 만들면 보편성을 갖기 어려워서 그것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학질(말라리아)밖에 없는데, 이 병의 증상과 치료의 과정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올 수 있겠다는 것에 대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수긍이 간다. ‘학’, 혹은 ‘학질’은 말라리아 병원충을 가진 모기에게 물려서 감염되는 전염병으로 고열이 남과 동시에 설사, 구토, 발작 등을 일으키고, 비장이 부으면서 빈혈 증상을 보이면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지금은 의학 기술이 발달하여 예방과 치료가 많이 수월해졌지만, 이것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는 백신 같은 것은 아직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학질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병이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학질에 걸려서 아주 오랫동안 고생하거나 사망하는 일도 자주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들이 상당히 많아서 이 병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학질은 고통도 심하지만 정말로 잘 낫지 않는 병이어서 사람들을 극강의 공포에 떨도록 하기에 충분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학질은 걸리는 경로도 제대로 모르는 데다가 잘 낫지도 않는 병이라서 그런지 귀신이 들어서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학질을 앓는 사람이 팔진법을 써서 귀신을 사문(死門)으로 내쫓으면 다시는 학질이 발작하지 않는다(人之病瘧者 用八陣之法 令其黜鬼于死門則不復作-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오창의 팔진도해에 발을 붙임(跋梧牕八陣圖解).”
집을 떠날 때 2권의 책을 아들인 장산인에게 주었는데, 바로 ‘옥추경(玉樞經)’과 ‘운화현추(運化玄樞)’였다. 산인(山人 장한웅(張漢雄))이 그걸 받아 수만 번을 읽고 나자, 또한 귀신을 부릴 수 있었고 학질(瘧疾)도 낫게 할 수 있었다.(臨行 以二卷付之乃玉樞經及運化玄樞也。山人受之 讀數萬遍 亦能呼召神鬼 治瘧癘-허균, 성소부부고, 장산인전)
이 외에도 학질과 귀신이 관련되어 있다는 기록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아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귀신의 장난(作亂)이라고 보았던 당시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학질은 지독한 병으로 오랫동안 앓으면서 나은 것 같지만 다시 도지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므로 당시에 학질이란 병을 낫게 하는 일은 일반 백성들로부터 왕실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난제 중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질은 귀신이 붙어서 생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산신령이 준 신기한 열매를 먹고 나았고 하거나 신통력을 부리는 사람이 나쁜 잡귀를 쫓아버려서 나았다는 등의 기록이 상당히 많은데, 귀신 같은 나쁜 것이 몸에 붙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떼다’, 혹은 ‘떼어 버리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학질을 낫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으면 가장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난 것을 가리켜 ‘학을 떼다’라는 표현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것도 혐오스럽지 않은 무엇인가로 돌려 표현함으로써 생활 속의 언어를 풍요롭게 하면서 정신세계를 살찌우게 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