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날(놋날) 같이' 어원
‘논날(놋날) 같이’ 어원
세차고 굵은 줄기로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것을 ‘비가 논날(놋날) 같이 온다’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놋-날’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에서 실제로 말하고 표기하는 것은 ‘논날’이다. 아마도 국립국어원에서는 ‘노+날’로 이해한 뒤 ‘사이시옷’을 넣는다는 원칙만 생각하고 ‘놋날’이 표준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이것은 구리와 아연을 섞어서 만든 합금인 ‘놋’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어서 바람직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하기야 ‘놋다리’에 대한 풀이를 하면서 구리 다리라는 뜻을 가진 동교(銅橋)와 같은 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놋다리’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이 허리를 굽혀 줄지어 엎드려서 만든 것으로 노끈처럼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진 다리라는 뜻인데, 이것을 금속인 ‘놋’으로 본 것이다.
‘논날’은 ‘노+날’의 형태로 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에서 ‘노’와 ‘날’이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그 어원은 자연스럽게 풀릴 것으로 보인다. ‘노’는 ‘실, 삼, 종이 따위를 가늘게 비비거나 꼬아 만든 줄’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끈’, ‘노내끈’, ‘노내끼’ 등으로도 불리는데, 조선 시대의 중세국어에서는 ‘놓’으로 나타난다. ‘노’는 ‘놓’에서 ‘ㅎ’이 탈락한 모양으므로 그냥 ‘노날’로 적고 ‘논날’로 읽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실제로 ‘노날’이라 표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이시옷이라는 규칙 때문에 ‘놋날’을 표준어로 하고 있는데, 올바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노’, 혹은 ‘노끈’은 돗자리나 가마니 등을 짤 때 중심과 모양을 잡는 줄로 쓴다. 즉, 무엇인가를 짜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세로로 여러 줄을 만들어 세운 다음, 그 사이에 가로로 다른 종류 실이나 줄을 넣어서 만드는데, ‘노’는 세로로 세우는 줄에 주로 쓰인다.
직물, 돗자리, 가마니, 짚신 등의 물건은 ‘실’이나 ‘노’ 같은 것으로 짜서 만드는데, 반드시 날줄과 씨줄을 서로 엇갈리게 놓아서 만들어야 한다. 세로로 세운 줄을 ‘날(날줄)’이라 하고, 가로로 넣는 줄을 ‘씨(씨줄)’라고 한다. ‘날(날줄)’은 위에서부터 아래쪽으로 노끈 같은 여러 줄을 드리운 것이다. 이런 날줄을 위아래로 고정한 다음 사이 사이로 씨줄을 촘촘하게 넣어서 돗자리나 가마니, 직물, 짚신 등을 짜낸다. 여러 개의 날줄을 길게 드리워놓은 모양이 마치 굵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모양과 흡사하다.
줄을 매는 틀로 하늘과 땅을 설정해 놓고 보면 굵은 줄기로 계속해서 내리는 비는 노끈을 이용해서 매어 놓은 날(날줄)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바로 ‘비가 논날 같이 온다’이다. 생활 속에 나타나는 일상적인 어떤 현상을 자연적인 것과 연결시켜 묘사함으로써 직설적이면서 직접적인 표현이 줄 수 있는 무미건조함과 가벼움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비가 세차게 온다, 혹은 비가 많이 온다는 말보다 얼마나 운치가 있으며, 여유 있는 표현인지를 생각해 보면 감탄과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