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溪(죽계) 2025. 4. 2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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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가지 어원

요즘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아주 많이 쓰는 표현 중 싸가지라는 말이 있다. ‘싸가지가 없다의 형태로 되어 있는 이 말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쓰고 있지만 사전에는 소위 말하는 표준어로 등록되어 있지 않고 특정 지방의 사투리라고 하면서 싹수가 정상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현상적으로 보면 지금은 싹수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고 싸가지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도 국가에서 편찬한 사전에는 이 말을 그저 사투리(方言)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

싸가지+아지의 형태이기 때문에 싹수를 어원으로 두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싹수싸가지로 자연스럽게 변모되었으니, 사전에서도 그것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지싹수는 같은 표현이지만 앞의 것은 순우리말(경우에 따라서는 아지를 兒枝라고 하여 나무의 어린줄기를 나타내는 한자로 보기도 한다.)이고, 뒤의 것은 우리말과 한자어과 결합한 형태이다. ‘싸가지의 어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지싹수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은 식물의 씨앗이나 줄기 등에서 이 나온 뒤에 그것이 자라서 둘 이상의 잎이 돋아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은 씨가 발아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으로 올라오는 것인데, 잎을 내지 않은 이런 상태를 맹아(萌芽)라고도 한다. 이 자라서 잎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은 일정한 크기의 줄기와 잎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 된다. 이때의 잎은 떡잎이라고 하는데, 양분을 저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싹의 윗부분에 있는 떡잎의 상태를 보면 식물의 성장 과정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아지송아지’, ‘강아지’, ‘망아지등으로 많이 쓰였던 것으로 보아 동물이나 식물에서 아주 어린 것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식물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싹아지는 매우 어린 싹으로 움이 돋아서 막 싹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는 잎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그리 많이 쓰이지는 않고 사라지면서 싹수라는 말이 주로 사용되면서 일부 지역에서만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전을 찾아보면 싹수는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 정도로만 설명하고 있어서 이 말이 어떻게 생긴 말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싹수󰡔차문화대전󰡕이라는 책에서 아수(芽數)라고 하면서 겨드랑이 싹의 개수라고 한 이래 위키 백과 같은 인터넷 사전 같은 데에서 이것을 그대로 수용하여 싹의 개수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싹수가 노랗다.’, ‘싹수가 없다.’ 등으로 쓰이는데, 싹의 개수와 노랗다는 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말이 가망이나 가능성이 없다는 뜻을 나타낼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사실 싹수는 싹의 개수가 아니라 싹의 머리, 싹의 맨 꼭대기라는 뜻으로 이라는 우리말과 (머리 수)’라는 한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표현이다. 움이 돋아 싹이 나온 뒤에는 싹의 맨 위에 있는 떡잎을 주로 보게 되는데, 이것이 가지고 있는 색을 보면 그 식물의 성장 가능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싹의 꼭대기는 주로 연녹색이거나 녹색인데, 이것의 색깔이 노랗거나 누리끼리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식물은 머지않아 시들거나 해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싹수가 노랗다라는 표현은 어떤 일이나 사람 등에 대해 잘 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없을 때를 지칭하는 뜻으로 된다. 참으로 재미있고 재치가 넘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그 아이는 틀렸어라고 하는 것보다는 직설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줌으로써 말하는 이는 덜 불편하고, 듣는 이는 감정이 덜 상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싹수라는 말이 주로 쓰였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설적이면서도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는 표현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다 보니 강원도와 전라도 지방에서 주로 사용했던 싹아지(싸가지)’라는 말이 전국적으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표현이 격해진 것은 싸가지뿐만이 아니라 노랗다라는 말도 없다로 바뀌면서 부정적인 뜻을 한층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되면서 지금 우리가 주로 쓰고 있는 싸가지가 없다라는 것은 거친 욕설에 가깝도록 느껴지는 말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여 두고 싶은 것은, ‘싸가지의 어원에 대해 어떤 이는 조선을 건국하고 도성의 사대문을 만들 때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 가지 덕목을 문 이름에다 붙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 네 가지 덕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지칭하는 데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지가 없다싸가지가 없다로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 한 번이라도 살펴볼 가치조차 없는 말이다. ‘사가지싸가지로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합리적 설명도 내놓지 못함으로써 일방적이면서도 주관적인 것으로 일관하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터무니 없는 것에 그치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현이 격해지는 모습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변화하는 하나의 양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퇴보에 가까운 현상일 가능성이 훨씬 커서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런 관계로 이런 현상은 별로 유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참으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