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어원
제비 어원
대표적인 여름 철새라고 할 수 있는 제비는 늦봄 무렵에 왔다가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돌아간다.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태어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특징을 가진 새이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주변에 사는 데다가 해충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제비는 복을 가져다주는 새로 인식되어 있다. 흥부전 같은 고전소설에서는 주인공인 흥부의 가난을 해결해 주는 복덩이가 바로 제비로 설정되어 있기도 하다.
사람들이 도시를 형성해 대형으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제비가 오지 않는데, 먹이를 잡기 위해서는 상당히 먼 거리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비를 보지 못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사람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는 제비는 훈민정음 창제 때인 15세기 초중반부터 ‘져비’라는 이름의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이거나 최소한 고려시대부터는 우리나라에서 둥지를 틀고 살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비가 사람이 사는 집 처마 밑 같은 곳에 둥지를 트는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자신과 새끼를 보호할 수 있어서다. 하늘의 사냥꾼이라고 할 수 있는 매 같은 동물이나 알이나 새끼를 훔치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하는 뱀 같은 것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데에 사람만큼 유용한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제비가 여러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농사에나 우리의 일상생활에나 모두 유익한 일을 하는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비와 사람은 일종의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제비는 날아다니는 곤충을 주로 잡아먹기 때문인지 비행 능력과 사냥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여름철에 웅덩이나 논 주변에 모기떼가 있으면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잡아먹기도 하고, 개미 잠자리 등 공중에 날아다니는 곤충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소금쟁이를 비롯해 물 위에 떠 있는 온갖 벌레도 제비의 주요 먹이가 된다. 물 찬 제비라는 말도 이런 사냥 행태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과 매우 친밀한 동물이 제비인데, 지금까지는 그 어원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 초기의 기록에 ‘져비’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현대어에서 제비의 울음소리를 ‘지지배배’라고 하는데, 조선 시대에는 이것을 ‘져비져비’또는 ‘졉비졉리’라고 했고 그것이 ‘져비’로 바뀌어서 이름으로 되었다고 추정하는 정도다. 그러나 기록상으로는 조선 시대에 이런 의성어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어서 정확한 어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성을 중심으로 하는데, 울음소리, 생긴 모양, 생활 습성, 외래어에서 차용 등의 방법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소쩍새, 뻐꾸기 등은 울음소리, 다람쥐는 달음질치는 습성, 갈치는 모양, 오징어는 한자어 등을 중심으로 붙여졌다는 것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비라는 명칭도 이런 것 중 하나를 골라서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무엇을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보았느냐를 파악하면 어원을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제비의 특성은, 첫째, 울음소리, 둘째 생긴 모양, 셋째, 생활 습성 등일 것으로 생각된다. ‘지지배배’하고 경쾌하게 우는 소리는 언제나 정겹게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 제비가 가지고 있는 매우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생긴 모양은 색의 조화와 함께 날렵한 몸매를 가졌으니 이것 또한 사람들이 눈여겨 볼만 한 특징이 된다. 다음으로는 제비가 가지고 있는 생활 습성이다. 물 찬 제비, 빠른 비행, 낮게 나는 습성 등은 제비의 성격을 규정하여 명칭을 붙이는 데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져비’라고 이름 붙인 옛사람들이 이 세 가지 요소 중 무엇을 중요하게 보았을까 하는 점이 관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의 생활에 영향력이 있는 것을 중심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특히 제비는 사람들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지닌 존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연관성이 있는 제비의 특징을 핵심적인 것으로 보아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높았지 않았겠느냐고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위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제비라는 이름은 ‘지지배배’라고 하면서 경쾌하게 지저귀는 소리에서 왔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 소리를 ‘져비져비’라고 했다는 것인데,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추측성으로 한 것에 불과하므로 논리성과 합리성을 갖춘 주장으로 보기 어렵다. 제비의 조선 시대 표기인 ‘져비’가 그 울음소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되는 하나의 설(語不成說)로밖에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져비’라는 이름은 어디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일까?
‘져비’라는 이름이 울음소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제비의 생활 습성이다. 제비는 곤충 사냥의 명수이며, 비행(飛行)의 천재이다.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의 삶과도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많은 해충을 제거함으로써 농사에 매우 유익한 환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무역을 중심으로 살아왔던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유독 조선 시대만은 농업을 주 산업으로 했던 사회였기 때문에 농사의 성패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곤충은 날아다니는 것이 기본이지만 높게, 빨리 날지는 못하는 존재다. 사냥의 모든 것을 날아다니는 상태에서 해결하는 제비의 특성상 크기가 작으면서 높게 날지 않는 곤충을 제대로 잡기 위해서는 빠른 비행 속도와 저공비행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빠르고 날렵한 비행 모양에서 물 찬 제비와 같은 표현이 등장했을 수 있으며, 저공으로 비행하는 모습에서 이름을 따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는 이유다.
제비의 저공비행은 날씨를 알려주는 구실도 톡톡히 했으므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제비가 저공비행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낮게 나는 곤충을 가장 효율적으로 잡기 위한 것이다. 특히 비가 오기 전에는 곤충이 더욱 낮게 나는데, 기압이 낮아지고 습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습도는 곤충의 날개에 큰 영향을 미쳐서 제대로 날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먹이를 잡기 위해 제비도 낮게 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본 사람들은 머지않아 비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모두 농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제비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먼저 나타나는 문헌은 1446년에 나온 훈민정음 해례본이며, 다음으로는 두보의 시를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1491년에 처음 발간한 분류두공부시(分類杜工部詩)이다. 그 외에도 훈몽자회(1527), 역주 금강경삼가해, 구급간이방 언해, 여유당전서 등 후대의 여러 문헌에도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모두 ‘져비’로 되어 있다. 조선 초기부터 ‘져비’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이 말은 훨씬 이전부터 일반적으로 쓰였던 명칭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명칭으로 볼 때 낮게 나는 새라는 점을 중요하게 여겨 ‘져비’라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져비’는 한자어인 ‘低飛’의 조선 시대 한글 표기인데, 바로 우리의 삶에 유익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제비의 생활 습성을 매우 잘 보여준다. 낮게 나는 새(低飛鳥)는 제비 외에도 참새, 까치 등 여러 종류가 있으나 저공비행이 매력적이면서도 농사와 사람들의 삶에 유익한 영향을 크게 미치는 존재는 제비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들은 제비의 이런 생활 습성을 눈여겨보아 그것으로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좋게 생각하는 제비의 이런 생활 습성으로 이름을 만들었을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거부감 없이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져비’는 왜 현대어에서 ‘제비’로 바뀌었을까? 한글에서 네 번째 모음인 ‘ㅕ’는 ‘ㅓ+ㅣ’의 형태이기 때문에 ‘ㅐ’ 혹은 ‘ㅔ’로 바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남부 지방에서는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며느리->메느(누)리, 벼슬->베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져비’가 현대어에서 ‘제비’로 변화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비’, 혹은 ‘져비’의 어원이 ‘낮게 나는(低飛)’에서 왔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조선 시대의 기록은 없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농사와 우리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날렵한 새가 가지고 있는 생활 습성을 중심으로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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