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溪(죽계) 2025. 4. 1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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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팥쥐 어원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민담(民譚) 중의 하나가 바로 콩쥐팥쥐이다. 이 이야기는 20세기 초에 권선징악(勸善懲惡)이라는 교훈을 강조하는 고전소설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콩쥐와 팥쥐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사람의 이름이면서 설화와 소설의 명칭에 쓰인 콩쥐팥쥐에 하필이면 콩, , 쥐 같은 것이 들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명칭이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콩쥐와 팥쥐가 여성의 이름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거나 상당히 특이하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콩쥐팥쥐라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나 어원, 유래 등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학술 연구가 이루어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원을 밝히려는 사람들도 별다른 시도가 없는 상태에서 의 어원은 조이라는 우리말의 이두 표기인 召史(소사)가 변한 것으로 보아 콩조이, 팥조이로 해석하며 그것이 어원이라고 주장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조이의 어원이 무엇인지, 이 말이 왜 주이로 되었다가 다시 로 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어서 논리성과 합리성의 측면에서는 커다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콩쥐팥쥐의 어원이 콩조이’, ‘팥조이에서 왔다는 주장은 초록불이라는 필명을 쓰는 소설가가 주장한 이래 별다른 비판이나 보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면서 여러 자료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서도 이 주장이 그대로 수용되어 서술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쉽다. 이것은 1979년에 정부에서 야심 차게 준비해서 편찬한 문화 백과사전인데, 별다른 검증 없이 받아들인 것이 이상할 정도다. 초록불의 주장에 따르면, ‘조이는 조선시대에 양반이 아닌 일반 여성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우리말 명칭이 있었는데, 이것을 이두(吏讀) 표기로 召史(소사)’라고 썼다고 했다. 이것의 원래 발음은 조시였는데, ‘이 탈락하면서 조이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지금도 남쪽 지방에서는 콩조시’, 팥조시로 부른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콩조시>콩조이>콩주이>콩쥐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콩쥐팥쥐는 동물인 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이라는 말은 조선시대나 기타 어느 시대의 문헌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말을 어떻게 해서 여성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근거를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굳이 근거를 찾는다면, 문집이나 왕조실록 같은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소사(召史)가 일반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였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그것이 조이를 이두 표기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다.

두 번째 문제는 조시에서 조이’, ‘주이등으로 바뀌었고, 그것이 다시 로 되었는지에 대한 논리적이면서 합리적인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음운이 변화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에 의해 생겨나는 일정한 기준과 근거에 의하기 마련인데, 이 변화 과정은 어디에도 그 이유를 찾기가 어려워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호사가들이 결론을 정해 놓고 나머지 내용들을 갖다 붙이는 민간 어원설로 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콩쥐팥쥐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떤 어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콩쥐팥쥐 설화나 소설을 보면 불교적인 성격을 가지는 요소들이 여러 곳에 등장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콩쥐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존재 중의 하나인 검은 소, 두꺼비를 비롯하여 인연의 징표로 나오는 신발, 죽은 뒤에 환생하는 대상인 연꽃, 구슬 등은 모두 불교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분명한 불교적 요소는 콩쥐팥쥐라는 이름의 유래와 어원에 있다.

콩쥐팥쥐라는 이름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8세기에 당나라의 학승(學僧)인 의정(義淨)이 한역한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 1권에 실려 있다. 무명(無明), 무상(無常), 생로병사(生老病死) 등의 이치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 이 경전에는 맨 앞에 쥐 두 마리와 뱀 네 마리(二鼠四蛇) 이야기가 실려 있다. “아득한 옛날 광야에서 놀던 어떤 사람이 사나운 코끼리에 쫓겨 등나무 뿌리를 잡고 우물 속에 숨었다. 뿌리 아래에는 흰 쥐와 검은 쥐가 그 뿌리를 갉아 먹고 있었고, 네 마리의 뱀이 물려고 하며 그 밑에는 독룡(毒龍)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그 나무에는 벌집이 있는데, 꿀이 다섯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나무의 뿌리가 흔들리니 벌이 나와서 그 사람을 쏘았다. 또한 들판에는 불이 붙어서 나무를 태우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광야는 발음이 없는(無明) 긴 밤이고, 사람은 중생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비유한 것이다. 우물은 삶과 죽음의 비유이고, 등나무 뿌리는 목숨의 비유이다. 검은 쥐와 흰 쥐(二鼠)는 밤과 낮, 영원히 이어지는 세월에 비유한 것이고, 네 마리 독사는 땅, , , 바람(地水火風)의 근본 물질에 대한 비유이다. 또한 벌꿀은 오욕(五欲)의 비유이고, 벌은 삿된() 생각, 불은 늙음과 병, 독룡은 죽음에 대한 비유이다. 여기에서 나온 사자성어가 삼독(三毒)과 오욕(五欲)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유한 이서교등(二鼠嚙藤-두 이, 쥐 서, 깨물 교, 덩굴나무 등)이다.

 

여기에서 등나무는 유기체의 생명을 나타내고, 흰쥐와 검은 쥐는 각각 낮과 밤, 해와 달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번갈아 가며 시간을 이어가기 때문에 세월이 끝없이 흐르는 것을 나타낸다. 두 마리 쥐가 나무를 갉아 먹는 것은 살아 있는 존재의 생명이 순간순간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흰쥐와 검은 쥐의 비유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설파한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콩쥐팥쥐 설화가 불교의 경전에 근원을 두면서 유교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콩쥐팥쥐라는 이름의 어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두 쥐 이야기를 근거로 하여 사람들은 것은 으로 바꾸고, ‘검은것은 으로 바꾼 다음에 쥐는 그대로 둔 상태로 두 주인공의 이름을 짓고, 인생무상의 불교적인 요소에다가 권선징악의 유교적인 요소를 덧보태서 이야기를 완성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 누른색을 띠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콩을 흰콩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콩쥐는 흰쥐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팥의 기본적인 색깔은 검다는 점에서 팥쥐의 어원을 유추해낼 수 있다. 요즘이야 여러 색깔을 가진 팥과 콩이 있지만 옛날에는 콩은 희고, 팥은 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므로 팥쥐는 검은 쥐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콩쥐팥쥐 설화가 불교적인 비유에 바탕을 두기는 하지만, 유교적인 요소를 근간으로 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어쩌면 그것의 발생시기는 조선시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흰 것은 선()으로 되었고, 검은 것은 악()으로 되어 콩쥐와 팥쥐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기는 하는데, 팥쥐가 콩쥐를 죽이는 것과 다시 살아난 콩쥐가 팥쥐를 잔혹하게 죽인 후 토막을 내서 젓갈로 만든 후 계모까지 죽게 만드는 것 등은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 구도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인지를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불교적인 비유가 개입하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는 시각으로 어원과 유래에 대해 접근한다면 콩쥐팥쥐설화에 대한 분석이 좀 더 심도 있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