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다 어원
‘부질없다’의 어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말 중에, 부질없다, 부질없이, 부질없는 등의 표현이 있다. 이것의 사전적인 뜻은, ‘대수롭지 않다, 쓸모없다, 허무하다, 헛되다, 쓸데없다’ 정도가 된다. 대수롭다가 중요하게 여길만하다는 뜻이니 대수롭지 않다는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등한시(等閑視)할 만하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부질없다는 말이 지닌 유래나 어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호사가(好事家)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서 그럴듯한 설명을 해 놓은 것이 인터넷상에 많이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어떤 언론 기관에서는 TV에서 이것을 정설인 것처럼 소개하기도 한다.
가장 많이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 ‘불질’에서 ‘ㄹ’이 탈락하여 ‘부질’로 되었다고 하면서 대장간이나 풍로를 예로 들고 있다. 쇠를 세찬 불에 달구어서 온갖 도구를 만드는 대장간에서는 쇠를 담금질할 수 있는 정도로 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바람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이것을 불질이라고 했다. 그래서 불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담금질이 안 된 쇠는 쓸모가 없으므로 여기에서 불질 없다는 말이 만들어졌고, ‘불’에서 ‘ㄹ’이 탈락하면서 지금과 같은 표현이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일컬어지는 것은, 불을 피울 때에는 불이 제대로 활활 타도록 하기 위해서는 풍로를 사용해서 불질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그것을 잘하지 않으면 불길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서 바람직한 결과를 낼 수 없으므로 여기에서 부질없다는 표현이 나왔다는 주장이다. 첫 번째 것이나 두 번째 것 모두 불과 관련된 내용인데, 이것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어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부질’이라는 말이 ‘불질’에서 왔을 것이라는 전제를 미리 해 놓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민간어원설이다.
이 외에도 ‘부질’은 ‘붙다(着)’에서 온 것으로 보아서 ‘붙일’이 ‘붇일’로 읽히다가 ‘부질’로 되었다는 의견, ‘부질(不質)’에서 온 것이라고 하면서 실체가 없다는 뜻으로 쓰여 지금의 ‘부질없다’가 되었다는 의견 등도 있으나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한 자료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어서 굳건한 신뢰를 얻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부질없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 표현의 용례는 1527년에 최세진(崔世珍)이 어린이 한자 학습서로 지은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자료에서는 ‘閑(마구간 한, 겨를 한)’에 대한 해설에서 ‘等閑(등한-소홀히 하다, 쓸데없다)’이라는 표현과도 같은 뜻이라고 하면서 이에 대한 설명을 ‘부졀업다’라고 해 놓았다. 또한 1576년에 한자 학습서로 편찬된 신증유합(新增類合)에서도 ‘閑’을 ‘부질업을 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735년에 임상덕(林象德)의 문집으로 발간된 노촌집(老村集)에서는 ‘且慢, 아직 부졀업다(쓸데없다, 대수롭지 않다)’로 기록하고 있다. 1736년에 내훈(內訓)을 언해하여 간행한 ‘역주 여사서 언해(譯註女四書 諺解)에서는 ’부졀업ᄉᆞᆫ 是(그런 것)과 부졀업ᄉᆞᆫ 非(아닌 것)ᄂᆞᆫ 내 문에 들게 말올 ᄯᅵ니라‘라고 한 기록이 나온다. 그 외에도 1790년에 편찬된 것으로 일본어와 우리말 학습을 위한 한자 입문서인 인어대방(隣語大方)에서도 ‘그런 부졀업 일은 不須多言고’라고 하여 ‘부졀업슨’을 지금의 ‘부질없다’와 같은 뜻으로 쓰고 있다. 이런 여러 자료로 볼 때 ‘부질없다’는 ‘부졀+업다’의 형태로 오랫동안 쓰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 놓고 보면 ‘부졀’의 어원과 뜻만 제대로 밝히면 ‘부질없다’의 어원을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조선 시대 중세 언어에서 ‘졀’로 표기되는 것은 현대어에서 ‘절’로 읽히는 한자어의 소리를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 기절(氣絶), 충절(忠節) 등은 모두 ‘졀’로 표기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형용사인 ‘없다’라는 표현은 독립적으로 쓰일 때는 사람, 동물, 사물, 사실, 현상, 일, 존재 등의 뜻을 가진다. 그런데, 우리말에서는 이것이 뒤에 붙어서 하나의 어휘로 만들어진 표현이 상당히 많은데, 한 글자로 된 것이 붙는 경우, 두 글자나 그 이상이 붙는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끝없다, 힘없다, 어처구니없다, 어이없다, 철없다, 재수없다, 하릴없다, 틀림없다, 예의없다, 막힘없다, 거침없다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두 글자나 세 글자 등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면서 앞의 말이 명사일 경우 그것은 모두 한자어라는 점이 특이하다.
형용사인 ‘없다’라는 단어는 문장 중에서 용언으로 쓰이기 때문에 그 앞에 오는 것은 주격이나 목적격에 해당하는 명사와 명사형의 어휘가 와야 한다. 명사형이 오는 경우는 동사나 형용사 등이 활용되어 명사처럼 된 것인데, 순우리말이 이런 형태로 만들어져서 결합한다. ‘막힘없다, 거침없다’와 같은 표현에서 이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정되어 있어서 활용이 가능하지 않은 명사가 오는 경우는 주로 한자어인데, ‘어이없다, 재수없다, 예의없다’ 등이 그것이다. 이런 표현들은 ‘없다’뿐 아니라 ‘하다’, 있다, 가다‘ 등의 다른 용언에도 아주 많다.
‘부질없다’에서 ‘부질’에 해당하는 중세 표기가 ‘부졀’인데, 이것은 한자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틀림없다’와 ‘하릴없다’에서처럼 두 글자로 된 순우리말이 앞에 왔을 경우 일정한 활용이나 변형을 통해 명사형으로 만들어져서 결합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부졀’은 어떤 활용이나 변형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부졀’을 한자어라고 본다면, ‘不絶’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不’은 부정이나 연속성을 의미하는 글자이고, ‘絶’은 끊어지거나 사라진다는 뜻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不絶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처럼 무엇인가가 지속되는 것을 나타냄으로써,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음 등의 의미를 지닌다.
영원한 것, 끊어지지 않는 것, 지속적인 것, 대수로운 것, 쓸데가 있는 것, 가치가 있는 것, 헛되지 않은 것 등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不絶이란 표현이 ‘없다’와 결합하면 반대의 뜻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으니, 영원하지 않다, 순간적이다, 헛되다, 쓸모없다, 대수롭지 않다 등의 뜻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부졀’은 한자어인 不絶의 우리말 표기가 되고, 그것이 음운 변화를 거쳐 지금의 ‘부질’로 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부졀은 어떤 음운 변화를 거쳐 지금의 ‘부질’로 되었을까?
‘부졀’에서 ‘부’는 한자어 ‘不’의 우리말 발음이다. 이 글자는 ‘아니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불’과 ‘부’, ‘비’ 등의 세 가지로 발음된다. 여기서는 ‘부’로 되었다. ‘졀’은 ‘절’의 중세 국어 발음이다. ‘ㅕ’는 ‘ㅓ+ㅣ’인데, ‘ㅣ’는 ‘ㅡ’, ‘ㆍ’와 함께 우리말에서 중심이 되는 모음이다. 이 세 개의 모음이 서로 결합하여 나머지 모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ㅣ’는 중성 모음이기 때문에 양성 모음과 음성 모음 어느 쪽과도 결합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성이기 때문에 어느 것과도 결합할 수 있지만, 사라질 때도 가장 먼저 사라지는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ㅡ’나 ‘ㆍ’ 등으로 변하기도 한다. 따라서 ‘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즐’로도 될 수 있으며, ‘절’로도 될 수 있고, ‘질’로도 될 수 있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졀’은 ‘부즐’로 되었다가 ‘부절’로 된 후 최종적으로는 ‘부질’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의 ‘부질없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 ‘부졀업다’가 조선 시대의 기록에 이미 여러 번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이것이 증명된다. ‘부질없다’로 된 대략적인 시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때인 것으로 보이는데, 형용사로 자리를 잡으면서 ‘부질없는’, ‘부질없이’, ‘부질없게’ 등으로 활용되어서 쓰였다. 이렇게 되면서 ‘부질없다’라는 말은, ‘영원하지 않은’, ‘恒常함이 없는’, ‘쓸데없는’, ‘헛된’ 등의 뜻으로 다양한 쓰임새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