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어원, 의미
오징어 어원, 의미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징어의 어원은 19세기 초에 丁若銓(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가 생활하면서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까마귀를 잡아먹는 물고기라고 하면서 ‘까마귀의 적’, 혹은 ‘까마귀 도적’이라는 어원을 가진다고 한 이래 그것이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주장으로 보면 오징어는 까마귀라는 육지 동물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물고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글을 잘 읽어보면 이것은 섬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으로 논리적인 근거나 설득력이 전혀 없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약전은 당시의 뛰어난 학자로 한자의 뜻을 제대로 모르지도 않았을 것인데, 왜 이런 내용의 글을 기록으로 남겼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자산어보의 내용은 지금까지 수많은 글이나 언론에서 이것을 사실처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징어의 주요 먹이는 크기가 작은 연체동물이나 작은 갑각류이기 때문에 땅위에서 주로 활동하는 까마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은 오징어의 어원으로는 적합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것(語不成說)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오징어의 어원과 의미에 대해 짚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징어란 이름은 한자로 된 이름에 대한 우리말식 발음이 점차 변화하여 오징어로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오징어의 한자 이름은, 烏鰂魚(오즉어), 花枝魚(화지어-오징어 다리에 여러 개 붙어 있는 흡반을 꽃으로 보고, 다리를 가지라고 생각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烏賊魚(오적어), 墨斗魚(묵두어), 墨魚(묵어) 등이 있다. 이 이름 중 다리에 초점을 두어 붙인 이름 하나만 제외하고 모두 검다는 뜻이 들어 있다. 墨은 먹을 지칭하기 때문에 검다는 뜻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烏(까마귀 오)는 검은 털을 가진 새를 본떠서 만든 象形字로 동물을 지칭하지만, 형용사로 쓰일 때는 ‘검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검은색을 가진 대나무를 오죽(烏竹)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까마귀 털이 검은 관계로 이렇게 뜻이 확장된 것이다. 오즉어와 오적어가 역시 검은 것에 착안한 것인데, 여기서는 의미가 확장되어 속이다, 사기를 치다 등의 뜻으로도 쓰였다. 오적어가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인데, 이것은 ‘검은 것으로 적을 속이는 물고기라’는 뜻이다. 오징어가 적을 만나면 먹물을 뿌려서 보이지 않게 하는 속임수를 쓴 다음 재빨리 도망가는 것을 중요한 특징으로 여겨서 붙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징어는 자기보다 강한 적을 만나면 몸에 가지고 있던 검은 물을 뿌려 상대의 앞을 보이지 않게 한 다음 재빨리 그 위기에서 도망치거나 먹이를 발견했을 때도 먹물을 뿌려 주변을 보이지 않게 만든 후 잡아먹는 수법을 쓴다.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벗어나거나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존재가 바로 오징어이며, 그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몸안에 있는 먹통에 든 먹물이다. 먹물을 뿌려 어둡게 만드는 것에서 상대방이 알거나 볼 수 없게 속이는 것으로까지 뜻이 확대되었다.
오징어라는 표현의 어원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烏鰂魚, 혹은 烏賊魚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烏鰂魚는 우리말로는 ‘오즉어’, 혹은 ‘오직어’로 발음 되는데, 여기에서 ㄱ이 탈락하고 ㅇ이 붙은 형태가 바로 오징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烏賊魚도 마찬가지다. 오적어, 오직어, 오징어로 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이름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검은 것으로 적을 속여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위기 탈출 작전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기를 치는 천재라는 뜻이다. 이러한 오징어의 먹물이 인간 세상에 알려지면서 또 하나의 사기 수법이 먹물로 인해 만들어졌는데, 오징어 먹물로 계약서를 쓰다는 뜻을 가진 烏賊契(오적계-우리나라에서는 烏賊魚 墨契(오적어 묵계)라고 하는데,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가 바로 그것이다. 오징어 먹물로 글씨를 쓰면 처음에는 선명하게 보이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글자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계약서를 쓸 때 오징어먹물로 서류를 작성하여 재물을 빼앗은 다음, 소송을 할 때에는 계약서에 글자 자체가 사라지고 없는 상태가 되어 승소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오징어의 위장술과 탈출 기술이 인간에게 와서는 완전한 사기술로 바뀐 셈이다.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쓴 후 시간이 지나면 글자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일설에는 그것을 바닷물에 담그면 글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도 있다. 이 내용은 조선 후기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청장관전서 제68권 「한죽당섭필상(寒竹堂涉筆上)」, 오징어 먹(烏鱡魚墨)이란 제목 글 속에 이런 내용의 글이 실려 있다.
먹물이라는 특수한 검은 물질을 써서 상대를 속이는 기막힌 재주로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지킬 뿐만 아니라 먹이를 잡는 기술로도 활용하는 오징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매우 많은 물고기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