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일상/2023

가을의 수종사

竹溪(죽계) 2023. 10. 27. 16:24
728x90
SMALL

이덕형 별서지(別墅址)와 가을의 수종사

한음 이덕형은 조선 중후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대활약을 한 인물이다. 그가 말년에 부모를 모시고 살았던 곳이 남양주시 조안면 용진리에 별서를 짓고 머문다. 이때 노계 박인로(朴仁老)가 그곳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곳의 풍광을 보고 사제곡(沙提曲)이란 가사를 짓기도 했다. 박인로가 경상도 도체찰사로 갈 때는 이덕형이 홍시를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 지은 시조가 조홍시가(早紅柹歌)이다. 네 수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것이 유명하다. ‘盤中 조홍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만은,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가 그것이다. 홍시와 육적(육적회귤(陸績)의 회귤(懷橘)를 연결시켜 효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이 별서터는 돌로 세운 표지석과 말을 탈 때 받침으로 썼던 노둣돌, 그가 심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 두 그루만 남아 있다. 별서 터 자리에는 일반 집이 들어서 있는데, 남양주시에는 아직도 이것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앞의 전망이 아주 좋았는데, 지금은 높은 건물이 많이 들어서서 답답한 것이 아쉽다. 이곳을 거쳐 수종사로 올라갔다.

동굴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 같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수종사(水鍾寺)는 산속에 있어서 전망이 막혀 있는 여느 절과는 달리 절벽 끝에 서서 강과 산을 멀리까지 바라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 절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고, 세종 시대까지도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석조부도탑에서 고려 시기의 유물이 나온 데다가 세종의 딸이었던 정의옹주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탑 명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정의옹주 부도탑은 태종의 태후와 금성대군 등의 발원과 시주로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가 이 절은 폐허가 되었던 모양인데, 세조가 이를 다시 중창한다. 문둥병(癩病)으로 평생을 고생했던 세조는 온천을 많이 다녔는데, 금강산에 갔다가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병이 잠시 나은 후 상원사를 중건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수두(二水頭-두물머리, 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날 밤 중에 북서 방향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느꼈는데, 다음날 그곳을 찾아가 보니 동굴 속에 십육나한(十六羅漢)이 있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울려서 종소리처럼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교에 많은 관심이 있었던 세조는 그곳에 절을 세우고 수종사라고 한 다음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었고, 그 나무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가을이 깊어 가는 날 靑山四友는 이덕형 별서(別墅) 자리를 들러서 수종사와 운길산까지 올라갔다. 매우 부족하지만, 그때의 감흥을 몇 자 적어본다.

가을의 수종사(秋天的水鍾寺)

옛사람 정취 따라 벗들과 水鍾寺에 오르니

물안개 핀 두물머리 三神山 옮겨온 듯하네!

 

세조께서 심은 杏木 온몸으로 가을 품었는데

하늘 가로지르는 까마귀 옛날과 다름없도다

 

북방 하늘 멀리 맑은 기러기 울음 들려오고

남방 푸른 산에는 정다운 목소리 숨어 있네!

 

霜降을 맞이하니 하늘은 높고 찬 바람 부는데

푸르름에 지친 잎들은 하나씩 그늘을 지우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