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동지(冬至)에 대하여
24절기 중 22번째 節氣인 동지는 대설과 소한 사이에 드는데,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낮의 길이는 夏至날 가장 길었다가 점차 짧아져서 동지에 가장 짧다. 동지를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동짓날을 죽었던 해가 다시 살아난다고 보아 생명 탄생을 기리는 축제를 벌이고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태양이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에서 동지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명절이었다. 과거에 동지를 새로운 한 해의 시작으로 보아 설로 삼은 것은 태양의 부활을 기점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동지를 잘못 해석하면 겨울에 이른 때, 혹은 겨울의 극치로 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동지에 담긴 깊은 의미를 퇴색시킴과 동시에 음양의 논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되기 쉽다. 그렇다면 동지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동지는 해가 가장 남쪽에 이르는 때(日南至)를 지칭한다. 즉, 한편으로는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내려가 남회귀선에 이르는 날을 가리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태양이 회귀하여 북으로 올라온다(日行南至,往北復返)는 뜻을 가진다. 지구의 북반부에서는 이날로부터 낮이 점차 길어지기 시작한다. 동지에서 至는 이르다는 뜻이 아니라 극에 달하다, 끝까지 가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해가 죽음을 이기고 새롭게 부활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언제나 희망을 먼저 생각하고, 말하며, 실천하는 선인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동지의 크기는 한 해와 맞먹는다(冬至大如年)고 생각했다. 동지를 지나야 비로소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하거나, 동지팥죽의 새알을 먹어야 나이를 제대로 먹는다고 하는 것은 모두 이런 뜻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지를 작은 설(亞歲)라고 해서 대단히 큰 명절로 여겼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서 먹기도 하고,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에 뿌려서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로 삼기도 한다. 동짓날에 팥죽을 먹는 유래가 신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원후 6세기경에 중국의 양나라 사람인 종름(宗懍)이란 사람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의 기록이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지팥죽을 먹었다는 기록이 고려 후반기에 등장하고 있으니 원형은 중국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농가월령가 11월령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동지는 명일이라 일양이 생하도다
시식으로 팥죽 쑤어 인리와 즐기리라
새 책력 반포하니 내년 졀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공채 사채 요당하니 관리 면임 아니 온다
시비를 닫았으니 초옥이 한가하다
단귀(단숨)에 조석하니 자연히 틈 없나니
등잔불 긴긴밤에 길쌈을 힘써 하소
베틀 곁에 물레놓고 틀고 타고 잣고 짜네
자란 아이 글 배우고 어린아이 노는 소리
여러 소리 지껄이니 실가의 재미로다
늙은이 일없으니 기작이나 매어 보세
외양간 살펴보아 여물을 가끔 주소
깃 주어 받은 거름 자로 쳐야 모이나니
동지는 세 부분으로 나누면, 일후(一候)에는 지렁이가 몸을 구부리며(蚯蚓結), 이후(二候)는 사슴뿔이 빠지고(麋角解), 삼후(三候)에는 우물물이 일렁인다(水泉動)고 했다. 도자기 물레처럼 돌아 순환하면서 대자연이 원기(元氣)를 조화시켜 만물을 생성하는 것을 가리키는 절후가 바로 동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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